세계 에너지 화두 된 ‘탄소중립’…해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독일, 재생에너지 보급 인센티브 제공…EU, 탄소배출권 거래제로 기후위기 대응
EU·미국 등 탄소국경세 도입 등 녹색규제 확대...글로벌 기업, RE100 참여 요구도 최근 20년간 전 세계 암 환자는 급증했고, 새로운 암 발병 사례 상당수가 기후변화로 발생했다.
특히 기후변화는 암 사망률 1위를 차지하는 폐암 발병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20년간 증가한 폐암 환자의 최대 15%는 대기 오염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기후 변화는 암 뿐 아니라 호흡기질환과 심혈관질환 발생률을 높인다. 높은 온도와 급격한 강수량 변화는 말라리아, 뎅기열 등 감염병 확산 위험도 상승시킨다.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온실가스, 대기오염, 자외선 노출량 증가 등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담은 56개 논문을 분석해 국제 학술지 ‘란셋 종양학’에 소개한 내용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나오미 바이엘러 연구원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50만 명 이상이 사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인류의 탐욕으로 얼룩진 기후 위기로 인해 이제 인류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게 된 것이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이처럼 커지면서 전세계는 ‘탄소중립’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120여개 국가가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선언하거나 추진중이고, 유럽과 미국은 수입품 등 모든 항목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겠다는 환경규제 움직임도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탄소중립 선언 후 2050 저탄소발전전략 보고회의에서 “탄소중립은 우리 정부의 가치 지향이나 철학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새로운 경제, 국제질서”라며 “세계 조류와 동떨어져서 따로 가다가는 탄소 국경세 등 규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국제사회와 함께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은 이제 전세계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됨과 동시에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된 것이다.
◆탄소중립, 전세계 동참 잇따라
세계경제는 전례없는 변곡점에 들어서게 됐다. 한국과 일본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고, 중국은 2060년 이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12월 그린뉴딜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를 발표 한 바 있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약속한 것까지 더하면, 전세계 경제 규모의 3분의 2가 넘는 국가가 탄소중립을 지향하게 된다.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진행되면 2030∼2052년 사이에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은 1.5도를 초과한다. 이같은 온도 상승은 일부 생태계에 치명상을 입혀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된다.
이에 따라 유엔은 지난 2015년 파리 협정에 따라 각국에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 (LEDS)을 올해 말까지 제출해 줄것을 요청했다. 핀란드는 지난달 2035 탄소중립을 명시한 LEDS를 유엔에 제출했고 프랑스, 덴마크, 뉴질랜드 등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을 법제화했다. 파리협정 당사국인 우리나라는 올해안에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마련하고, 2030 국가결정기여를 갱신해 유엔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 탄소배출권, 탄소세 도입으로 탄소 중립 실현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에서 전세계 국가들은 탄소 중립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을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만큼 숲을 조성해 산소를 공급하거나,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수소, 태양, 풍력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 기후변화의 위협이 세계적 쟁점으로 떠오르자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주된 방향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규제하고, 재생에너지에는 경제적 유인(인센티브)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1991년 세계 최초로 재생에너지 판매가격을 보장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화석연료·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를 우선 이용하도록 하는 규제도 만들었다. 이같은 노력덕에 올해 상반기 기준 독일 전력의 48.7%가 풍력, 수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유럽연합(EU)은 1만4000여개의 발전시설 및 산업공장 탄소배출을 ‘탄소배출권 거래제’로 해결하고 있다. 탄소배출권은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사업장이 정부로부터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할당받아 그 범위 내에서 감축하되, 초과 배출이나 감축이 있으면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탄소에 가격을 매겨 온실가스를 상품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헝가리의 경우 배출권 거래를 통해 얻은 수익을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 개선사업에 투입하고, 체코는 공공부문 건물 에너지효율 증대에 재투자하고 있다. 탄소배출량 2위로 관련 수익을 재생 에너지나 저탄소 기술에 투입하는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등 9개 주 정부가 별도로 ‘지역온실가스구상’을 설립해 탄소배출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1990년 핀란드에서 처음 도입한 ‘탄소세’를 온실가스 저감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각국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탄소세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각종 화석연료 사용량에 따라 부과하는 환경세를 말한다. 현재 스위스, 스웨덴 등 50개국이 탄소세를 시행중이다. 스위스는 최근 자국 출발 항공권에 최대 120 스위스프랑(약 14만6000원)의 탄소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를 차지하는 민간 항공 수요를 억제하지 않고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스웨덴은 1991년 탄소세를 도입해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6% 줄이면서도 78%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유럽연합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소극적인 나라에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탄소국경세 시행을 예고했다. 2023년 도입을 목표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유럽연합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제조된 제품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2025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으로 환경 의무를 준수하지 못하는 국가나 기업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물리는 탄소 국경세 시행을 예고했다. 기후변화는 단지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경쟁력 문제로 발전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 RE100 참여 추세
기업차원에서도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선언하는 글로벌 기업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이른바 RE 100 캠페인 참여 기업이다. 2014년부터 본격화해 구글, 애플, BMW, 스타벅스 등 전세계 255개사가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RE100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거래하는 협력업체까지 RE100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세 등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RE100을 이행하는 것이 탄소배출권을 다량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글로벌 사회 인식 변화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나 투자자들은 기업 경쟁력을 평가하는 요소 중 하나로 기후 변화 대응 지표를 넣고 있다.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여부’가 해당 기업의 해외 수출 및 사업 진출 가능성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탄소 중립을 향해 빨라진 국제 흐름 속에 우리나라는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주공급원을 전환하고, 전력망 확충과 지역 중심의 분산형 전원 체계를 확산하는 한편, 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IT 등 3대 에너지 신산업 육성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특별기금 신설 등 재정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중장기적으로 세제와 부담금제도의 개편도 논의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친환경차,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 수소 등 저탄소 기술을 언급하며 “우리의 강점인 디지털과 그린이 접목돼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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