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백야 김좌진 장군 역사 정립 방안, 전재진

백야 김좌진 장군, 가족사 조작은 끔찍한 범죄행위

곽금미 | 기사입력 2020/06/19 [09:30]

논평] 백야 김좌진 장군 역사 정립 방안, 전재진

백야 김좌진 장군, 가족사 조작은 끔찍한 범죄행위

곽금미 | 입력 : 2020/06/19 [09:30]

 백야 김좌진 장군 역사 정립 방안 

김좌진장군역사정립회 사무총장 전재진

 

 

우리는 일제침략에 맞서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불후의 공적을 남긴 만주독립군의 명예를 짓밟았다.

죽어 말이 없는 그들의 역사와 가족사를 산자들이 자신의 공적 부풀리기로 많은 부분이 서술형용기법으로 난도질당했다.

 

학자들의 이 같은 저술은 국민을 기만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비단 백야 김좌진만이 아니다. 이 나라에 국내외는 물론 특히 만주 독립군의 후손 가운데 가짜가 즐비하다는 말이 뭇사람에게서 회자되어 왔다. 이는 우리의 자화상을 부끄럽게 하고 있으며, 후대들에게 버거운 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광복 7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일본 정부의 지원 속에서 친일파들의 극성이 마치 봄날의 들불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일본제국의 모략전략에 휘말려 철저하게 유린당한 김좌진 장군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김좌진 장군의 공적과 가족사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조선총독부 학파와 해방 이후 남한 주둔 미군 전투부대 24군단 소속 정보기관인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와 이승만의 비호 아래 활약한 우익테러조직 백의사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청산되지 아니한 친일파와 미국과 일본의 식민정치, 식민경제, 식민문화에 절여져 정치야욕에 동공을 반짝이는 정치인들에 의해 찬란한 문화와 원대한 역사정의와 위대한 민족정기인 홍화평(홍익인간과 동양평화)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즉 김좌진 장군의 공적과 가족사가 조작왜곡되었을 뿐 정립되지 못했다. 하여 만주 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맞이하여 정립해야 할 김좌진 장군의 생애와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에 독자들이 상호 조사연구분석의 결과를 모으기 바란다.

 

《⓵김좌진 망명설 김좌진과 김계월의 조우설 김계월의 김좌진 씨() 잉태설 김좌진의 부인(夫人)김좌진의 가족 만주 체류설 김좌진 가족 만주 해후설 김좌진 유해 귀환설 김좌진의 정실 오숙근 여사 귀국설 오숙근 여사 사망설 김좌진 장군 폄훼성 음해설 김좌진 장군 후손설은 마땅히 과학적, 법적, 사실적, 인문사회학적으로 정립되어야 하며, 대한광복회 길림지부 김좌진과 대종교와 8(八老)의 실체 북로군정서 청산리전투와 밀산 퇴각 자유시사변과 김좌진 신민부 김좌진과 코민테른중공조공과의 관계 삼부통합 실패 원인 한족총연합회 만주 김좌진장군기념사업의 문제점 만주 김좌진장군 연구 실제 김좌진의 유물(사료) 사취폐기사건 김좌진의 후손 만주 생활상 김장춘의 수습 방안 한국사회의 김좌진 가족사 정립에 대한 체념들이 조사연구토론되어야 한다. 청산리대첩 이후 만주 동포사회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학살방화강간약탈 실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맞이하여 김좌진 장군의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보은행사와 기념음악회를 이틀에 걸쳐 시행한단다. 홍성군이 주관하고 주최한다 하니 군민에게는 고무적인 일이다. 하여 김좌진 장군의 역사 정립에 대한 학술토론회도 같이했으면 좋겠다.

김좌진장군역사정립회 사무총장 전재진

2020. 6. 12

 

 

 

 

백야 김좌진 장군 가족사 조작은 끔찍한 범죄행위

 

김좌진장군역사정립회 사무총장 전재진

올해는 만주 독립군 항일전쟁의 하나인 청산리대첩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충남 홍성군민의 자긍심이자 만주 독립군의 영웅이요, 대한민국의 표상인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을 기념하고 보은하는 행사를 홍성군이 주관하고 주최한단다.

 

이에 때를 맞춰 김좌진 장군의 가족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남의 제사상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느냐!”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김좌진 장군을 청산리대첩의 영웅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여기서 먼저 중국 길림성 왕청현에 거주하는 김장춘의 사연을 전하자면 김장춘은 김좌진 장군의 증손자이다. 증손자임을 증명할 사료는 1990~1991년 무렵 김장춘이 왕청현 교육국 향토사학자 문호갑 선생에게 연구조건으로 제공한 것을 강용권 외 몇몇 무모한 사람들이 사취해가 어디론가 몽땅 사라졌다.

 

이에 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하여튼 김장춘은 지금까지 장군의 후손이라고 자처해 온 사람들 모두 그들의 조상의 묘를 파묘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유전자대조검사로서 장군의 후손 진위를 판가름하겠다고 필자에게 전해온 것이 지난 2월이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김장춘의 입장도 바뀌었다.

 

바로 김두한씨가 조성한 장군의 부부 합장묘소와 김을동씨가 장군의 손녀라고 제시한 가족사진은 모두 다 조작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말하기를 장군의 정실 부인 오숙근 여사는 1948년에 흑룡강성 보청현에서 큰아들 창렬이 토지개혁심판대에서 처참하게 맞아 죽는 광경을 현장 목격하고 몸져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는데 어떻게 김을동씨가 6살 때인 1951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사진 속에는 오숙근 증조모의 얼굴이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숙근 증조모는 1948년도에 보청에서 둘째 아들 창규와 인척 오춘택씨가 장례를 치렀기에 증조모의 묘가 보청에 있는데, 김두한씨는 10년 뒤인 1958년에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에 장군의 부부 합장 장례를 치렀기에 조작이라고 완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두한씨가 1958년에 치른 장례는 누구의 시신인가를 밝혀야 하며, 김을동씨가 6살 때 찍었다는 사진은 혹시 조작(유령)은 아니었는지를 조사하여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장춘씨는 다시 필자에게 전해왔다. “김을동씨의 사진 조작과 김두한씨의 묘소 조작은 인권에 반하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므로 대한민국의 법과 국제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이들과는 유전자대조검사를 한다거나 대화할 가치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

김장춘씨 일가의 고난의 가족사를 누가 알겠는가! 김장춘씨가 장군의 정통 혈족으로 밝혀지는 날 곧바로 장군의 가족사 조작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행위였는지 드러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우리 국민은 역사에 기만당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